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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
단전호흡만큼이나
오해와 편견도 많고
왜곡과 변질도 많다.
명상과 단전호흡은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수행법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해와 왜곡이 많은가?

우리의 모든 삶이 명상이다.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은
명상이 되어야 하고,
명상이 아닌 삶은 무의미하다.
삶 자체가 명상이고 수행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수행을 하고,
관심을 갖는 이들도 부쩍 많아졌다.
실제로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실로 폭발적이다.
 
그러나 막상 명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크게 혼란스럽다.
무엇이 명상인지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명상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명상의 상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혼란이고,
명상의 어려움이다.
 
명상하는 방법을 배우고,
명상을 시도하고
어떠한 행위를 하면서
명상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명상의 상태에 들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고 있지만
정작 명상을 잘 모른다.
수많은 단체에서 명상을 한다하지만
명상을 하기 위한
시도만이 끊임없이 반복될 뿐
명상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수많은 명상단체들이
명상을 시도하는 행위 자체를
명상이라고 가르친다.
오직 시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그런 지경이다.

하지만 명상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경험을 해왔고
또, 자주 일어 날 수 있는 것이다.

명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스스로 일어난다.
완전한 무아의 경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거기에 그렇게
실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상의 실질적인 의미는
자신이 명상의 상태에 있음을
자각해야 명상이라 할 수 있다.
무아지경에 빠지거나 혼돈의 상태는
명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의도된 생각이나
의도하는 마음이 없는
텅 빈 의식의 상태를
고요한 가운데 맑게 깨어 자각하는 것이다.
즉 무념무상의 상태를
깨어서 알아차려야 명상이다.
 
사람들이 명상을 한다는 의미는,
명상이 일어나도록
어떤 기법이나 방편을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진정한 명상이 아니다.
그냥 명상을 위한 시도일 뿐이다.
이것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한다.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다.
명상을 했더니 정신질환이 생겼다.
명상 때문에 정신이 돌았다.
명상을 하면 귀신이 보인다.
무지한 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단전호흡을 하면 일찍 죽는다.
단전호흡을 하면 오장육부가 썩는다.
단전호흡이 질병의 원흉이다.
세상은 참 무지하다.
무지한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지를 왜곡하면 악이 된다.
무지를 사용하여 선동하면 죄가 된다.
이런 사람들은 명상을 어렵게 만든다.
단전호흡마저도 아주 힘들게 만든다.
 
세상의 그 어떠한 시도도
명상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면
단전호흡은 참 이상한 짓거리가 된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수행은 아니다.
인위적이지 않게
그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시도하지 않고
그 무엇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어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인은
무언가를 하는 것에 훈련되어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본적이 없다.
그래서 휴가를 가면서도
컴퓨터를 가지고 가고
책을 가지고 가야하고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휴가 중에도 오락을 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하고, 놀이라도 해야만 한다.
마구 달려야 하고, 계속 뛰어야 한다.
이건 휴식도 아니고, 휴가도 아니다.
 
명상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도
그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무위를 하기위해
유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즉, 명상을 하기 위해
명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전혀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명상음악을 들어야 하고,
명상호흡을 해야 하고,
명상이완을 해야만 하고
명상의 말씀이라도 들어야 한다.
이는 명상을 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주문을 외고, 기도를 하고,
집중을 하고, 소리를 듣고,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해야 한다.
묵상을 하고, 침묵을 하고,
걷고, 뛰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 만 가지의 명상법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다.
그래서 명상은 아주 어려운 것으로 둔갑했다.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
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꽃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여름밤에 툇마루에 누워 별을 헤이다가
하늘의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나비를 잡으러 다가가다가
문득 나비가 되어 꽃에 앉아 본적이,
풍물놀이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내 중심에서 소리가 울리던 것을,
부지런히 걷고 있었는데
걷는 자와 지켜보는 자가 분리된 것을......
 
하지만 이것 자체가 명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단지 무념무상의 상태였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명상의 상태를 경험한 수행인이라면,
그러한 경험들이
명상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라도 명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 자체를
명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지켜보는 자로 존재해야 한다.

도대체 명상이 무엇이고
왜 그토록 어렵다고 하는가?
 
그 동안 위장하고,
채우고, 다지고, 만들고,
조작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뭔가를 하지 않으며 살아본 적이 없다.
자연스런 의식을 허용할 여유가 없었다.
위장을 잘해야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된다.
채우고 다져야 민주 시민이 된다.
꾸밀 줄도 알아야 존경받는다.
뭔가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너무도 단단해졌다.
결코 무너지지 않고,
열리지도 않는 철옹성이 되었다.
이것은 자신으로 돌아오는데
아주 큰 장애가 된다.
 
명상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에서,
무아의 상태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이다.
그 순간 주인이자 본질인 자성이
그걸 각성하기만 하면 그 뿐이다.
이것이 명상이다.
 
그러면 그 명상이 왜 필요하고
그 명상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본래의 자기 본모습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이 본모습이
우주의 본체고,
대 우주이며,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모습을 바로 알아
지혜를 깨닫기 위함이다.
자성을 덮고 있는
가짜 얼굴들을 벗어 버리고,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더 쉽게 말을 한다면,
명상을 통하여
우리의 의식을 순화하고,
우리의 육체를 정화하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의 평안과 평화를 유지해
참된 건강을 회복하려는 것이
현대인이 명상을 하는 목적일 것이다.
심리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본래 명상이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행위를 쉬고 단순히 존재하는 것,
그것을 주시하여 알아차리는 것을
명상이라 말하는 것이다.
명상은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다만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쉬는 것이다.
완전한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각성하여 자각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초보자가,
또 늘 무언가를 해왔던 현대인이,
무위라는 명상을 통하여
우주심, 성품, 자아, 참나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는 자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휩쓸리고 거칠게 살아 왔기에
강은 위험한 곳이고
건너는 멀기만 하다.
세파를 건너기 위해
튼튼한 배가 필요하고
부지런히 노를 젓지 않으면
저편이라는 피안의 언덕에 닿기 어렵다.
그러나 강을 한 번 건너고 보면
강은 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피안이라는 본성에 닿으면,
하늘 문을 열고 진리에 든다.
 
배는 목적이 아니다.
방편은 방편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배는 쓰고 나서 버려야할 도구다.
배가 피안은 아니다.
배를 끌어안고 계속가려 한다면
배는 결국 족쇄가 된다.
 
명상은 깨달음의 길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어서 닫는다는 뜻이다.
진리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의식의 세계를 넘어 맑고 밝게 깨어서
본성의 자리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명상이고
명상자체가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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