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은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경험한다는 말은 무언가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나는 왜 생명으로 이 지구를 찾아와 삶이라는 여행길에 올랐을까요? 내가 선택한 삶일까? 누군가의 선택으로 나가 존재하는 걸까? 내가 선택해서 찾아온 여행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여행 중에는 수없이 많은 설정이 필요하고, 어떤 선택이든 하면서 이 여행을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삶 자체가 고통이라 합니다. 인생은 괴로움이라 합니다. 나는 그 어떤 선택을 할 수도 없고, 결정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서 그런 걸까요?
태어난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더라도, 어린이가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인데, 내가 선택하지 않고 내가 결정하지 않은 삶이 가능하다고 믿으시나요? 내가 아니라면, 누가 판단하고 그걸 누가 결정하나요? 하늘인가요, 신인가요? 운명인가요, 업보인가요? 혹시 자기가 선택해 놓고 팔자타령을 하는 건 아닐까요? 누구는 뭐 이런 곳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이런 선택을 했고, 이런 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이런 몸으로 살아가느냐고 강하게 반문하고 싶은가요?
혹시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죽음이 있다고 믿으신다면, 그대는 몸이 전부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아니라고요?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요? 영혼이 뭐지요? 어떤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막연하게 영혼이니, 신이니, 저세상이니, 심지어는 지옥이니 천국이니 하며 허무맹랑한 소리를 읊어대는 것은 아닌가요?
인간은 왜 이렇게 허무맹랑한 허상에 의지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걸까요? 물론 고대의 원시시대에는 모든 게 두려움이었습니다. 맹수도 무섭고, 천재지변도 두려움이었고, 심지어는 낯선 인간을 만나는 것도 공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떨쳐내며 위안을 받으려고 무엇이든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겠지요.
지금 나는 무엇을 두려워할까요? 무엇 때문에 힘들고 아프지요? 분명 맹수도 아니고, 천재지변도 아니며, 사람이 두려움의 대상은 아닌데, 무엇으로 힘들고 아픈가요? 혹시 남들처럼 살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가요? 기대치에 못 미치기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아닌가요? 선택을 할 수 없는 처지라서 그런가요?
나를 바라본다는 건 그래서 아주 중요합니다. 나를 보기 전에 먼저 남부터 보며 살아야 했습니다. 내면을 성찰해 본 적도 없이 외부 세계에 적응하며 살기 바빴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부터 걱정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수단이 중요하고 목표가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경쟁이 아니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길에는 수단이 필요하기보다는 경험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경험하기 위해 삶이 필요하고, 경험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여행을 자주 떠납니다. 왜 여행하지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버스 타고 비행기 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오며 가며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누리려고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이 설레고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을 만나서 무슨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삶이라는 여행길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중요하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하고, 얼마나 이루었느냐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삶 역시 여행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만남이 중요하고, 경험이 중요하고, 설렘이 중요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기에 매력적인 삶이면 안 되는 걸까요?
내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경험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어떤 경험일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이번 여행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