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걸방

도화 정걸방 이야기

 

정걸방 도인 이야기

조선조 말엽에는 정걸방이라는 이인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정걸방 선생은 일제 때 속리산, 지리산 등에서 제자를 길렀다. 만년에는 주로 지리산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의 본명이 무엇이고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제자들도 전혀 몰랐다. 누가 이름을 물으면 姓은 鄭이고 이름은 거랭이(擧止)라고 대답했다. 정걸방이라는 이름은 정씨 거지를 뜻하는 말이다. 정걸방은 어느 날 홀연히 지리산에 나타났다. 그의 행색은 영락없는 거지였다. 옷은 해질대로 해진 누더기였고 발에는 짚신을 걸쳤는데 이 또한 누더기었다. 세수를 하지 않아 얼굴에는 땟국이 줄줄 흘렀다.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여느 거지로만 알았다. 그 또한 거지 행세를 했다.

스스로 이름이 거랭이라면서 거지라 자처했고, 밥을 빌어먹으며 지리산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세석평전 옆 음양수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음양수에 살면서도 자주 산에서 내려와 구걸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지리산에는 수도하러 입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 정걸방 선생을 범상치 않은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정걸방 선생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 달라고 간청했다. 이리하여 정걸방 선생한테 제자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지리산 사람들은 정걸방 선생을 따르는 제자들을 ‘거랭이 도인’이라고 불렀다.

정걸방 선생은 꼭 필요한 때 가끔 한번씩 이적(異蹟)을 행사했다. 마을에 갔다가 제자들을 데리고 단숨에 음양수까지 올라오기도 했고 소나기가 퍼붓는데 제자들로 하여금 비 한 방울 안 맞게도 만들었다. 제자들은 이런 이적들을 목격하고 더욱 열심히 스승의 가르침을 따랐다. 정걸방 선생이 대단한 이인(異人)이라는 소문이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널리 퍼져나갔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정걸방 선생이 혹시 ‘정도령’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도령’이란 우리 나라의 여러 예언서에 등장하는 구세성인(救世聖人)이다. 옛 선지자들은 말세 때 ‘정도령’이 출연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리라 예언했다. 그리고 ‘정도령’은 대도인(大道人), 대성자(大聖者)라고 말했다.

일제 때는 이 예언을 믿고 ‘정도령’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도령’이 왜인들을 물리치고 만백성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리라 믿었다. 또 누가 큰 도력(도력)을 지녔다 하면 그이가 행여 ‘정도령’이 아닐까 기대를 걸어보곤 했다.

왜인들은 이를 아주 싫어했다. 그리고 도인들을 무서워하며 탄압했다. 정걸방 선생에 관한 소문은 지리산 일대에 파다해졌다. 구례경찰서에 근무하던 순사들도 그 소문을 들었다. 어떤 순사가 이 얘기를 곧바로 경찰서장한테 보고했다. 경찰서장은 왜인이었다. 경찰서장은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정걸방 선생이 그토록 대단한 도력 (道力)을 지녔다면 곧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따를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정걸방 선생을 따르는 제자들이 큰 세력을 이룰까봐 무서웠다. 그리되면 자신이 문책당할 터였다. 경찰서장은 당장 정걸방 선생을 잡아오라고

부하들한테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순사들이 총을 들고 떼지어 음양수로 갔다.

그들이 선생을 잡으러 오기 전날이었다. 정걸방 선생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우리의 인연이 다 했구나. 내일 순사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겠다. 이번에 가면 오랫 동안 세상에 못 나온다” 선생의 말은 제자들에게 청천벽력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제자들은 스승에게 어서 몸을 피하시라 권했다. 선생은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때가 되었느니라. 너희는 내가 떠나더라도 부지런히 수행(修行)에 힘쓰거라. 부디 마음을 잘 닦고 업(業)을 짓지 마라” 한 제자가 선생에게 그럼 언제 다시 오시느냐고 여쭸다. 선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한참 만에 뜨며 입을 열었다.

“멋 훗날에 다시 온다”

또 한 제자가 스승님을 다시 뵐 수 있는지 여쭸다. 정걸방 선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시는 너희를 볼 수가 없다. 너희 제자나 자손들 중에는 나를 만나게 될 사람들이 꽤 있다”

이튿날 정걸방 선생은 제자들을 일찍이 피신시켜 놓고 초막에 혼자 있었다. 얼마 후 순사들이 몰려왔다. 선생은 순순히 그들을 따라갔다. 제자들은 숲속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선생을 뒤따라갔다.

어느덧 구례경찰서에 이르렀다. 제자들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 하고 정문 밖에서 서성대며 동정을 살폈다. 순사들은 정걸방 선생을 겅찰서장 앞으로 끌고갔다.

경찰서장은 정걸방 선생의 행색을 훑어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떨어진 누더기옷을 입고 얼굴엔 땟국이 줄줄 흐르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로 보였다. 경찰서장은 저런 자가 무슨 도인이냐 생각하며 눈살을 찌뿌렸다.

정걸방 선생은 그러는 경찰서장을 향해 바보처럼 히죽이 웃었다. 경찰서장은 선생한테 시큰둥하게 몇마디 물었다.

선생은 횡설수설하며 계속 웃어댔다. 경찰서장은 선생의 정신이 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선생을 당장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선생은 아주 천천히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마당 한 가운데에 이르러 우뚝 멈춰섰다.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제자들은 웬일인가 의아해하며 뚫어져라 선생을 지켜봤다. 경찰서 안에 있던 순사들의 눈길도 선생한테 쏠렸다. 그때, 선생이 갑작스레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흡사 천둥소리 같았다. 순사 몇 사람이 깜짝 놀라 손으로 귀를 막는 순간, 선생의 모습이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선생의 모습은 점점 더 흐릿해지더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정걸방 선생은 경찰서 안마당에서 자취를 감춘 지 몇십년 뒤에 단 한번 세상에 다녀갔다고 한다. 선생의 2대(二代) 제자 둘이 그를 뵈었다고 한다. 이 일화도 매우 신비롭다.

선생을 뵌 이대 제자들은 지리산 음양수에서 수행 중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선생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뿐 직접 뵌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웬 노인이 음양수로 그들을 찾아왔다. 노인은 자신이 ‘정거랭이’라고 말했다. 이대 제자들은 허겁지겁 노인 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어쩔 바를 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짜 정걸방 선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노인은 절을 받은 뒤 그들을 데리고 삼신봉으로 향했다. 노인의 발걸음은 나는 듯 빨랐다. 제자들도 딸려가듯 노인을 뒤따랐다. 신기한 일이었다. 제자들은 그제서야 이 노인이 틀림없는 정걸방 선생이라고 믿었다. 세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리를 달려갔다.

음양수와 삼신봉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산비탈로 내려가더니 한뼘 남짓한 아기 소나무를 캐왔다. 그리고 이 소나무를 능선길 옆에다 심으려 이렇게 말했다.

“이게 자라서 가지에다 북을 매달 수 있게 되면 내가 다시 일어나 선경(仙境)으로 변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인(仙人)처럼 살게 된다”

노인은 이 말을 마치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정걸방 선생의 일대(一代)제자들은 모두 세상을 떴다. 이대(二代), 삼대(三代) 제자들이 선생을 기리면서 선생이 다시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또 그날이 오면 인간 세상이 선계(仙界)와 같은 이상향으로 변하리라 굳게 믿는다

지금도 지리산에 가면 산중 마을 노인들로부터 정걸방 선생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전설같은 일화들이 많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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