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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다

깨어나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깨어나는 주체는 뭐고, 어떻게 깨어날 수 있다는 건가요?
깨어나다의 뜻은 지금 여기서 알아차리는 의식을 의식하며 함께 흐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흘러야 할까요?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현재만이 유일한 시간이고, 여기만이 삶의 현장이지만, 고정된 현재가 아니고, 고정된 공간이 아니기에 알아차림과 함께 의식도 흘러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의식이 주인공인가요?

우리는 공기를 매 순간 마시고 내보내지만, 그 공기가 내 것인가요? 허공의 것인가요? 공기는 누구의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이용하여 보고 느끼고 알아차려 가면서 의식의 세계를 살아가지만, 그 의식도 공기와 같아서 그 누구의 것일 수 없습니다.

내가 마신 공기가 내 몸과 정신을 새롭게 하듯이, 온 세계를 열어가는 의식 역시 공기와 같습니다. 의식하며 나를 인지하고, 인지하며 나를 의식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현실에서는 내가 주인공 노릇을 하지만, 공부하다 보면 이 ‘나’의 실체가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기에 나 역시 주인공이 아니요, 의식도 주인공은 아니지요. 이렇게 말하면 영혼이니, 자아니, 신이니, 허공이니, 하며 별 것을 다 끌어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억지로 꾸며낸 개념에 불과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그런 개념을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밝혀내야 합니다.

 

고정된 것은 없다니 무슨 뜻인가요?

머물러 고정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것은 시공간 속에서 흐를 뿐입니다. 물론 시공간도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지만, 의식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지금 여기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과거나 미래는 의식과 함께 흐르며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고, 공간 역시 내가 보고 느끼며 알아차리는 의식의 범위로 한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역시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할 수 있어요.

 

어떻게 깨어날 수 있나요?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부터 이야기 해야겠지요. 왜 깨어있을 수 없는 걸까요? 습성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모든 생명체는 현재를 살지만, 생각과 마음이라는 그림자는 늘 과거나 미래로 떠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왜 그렇게 됐지요? 두렵기 때문이에요.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천재지변이 두렵고, 맹수가 두렵고, 적이 두려웠어요. 인류는 수십 만 년 동안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며 밖으로만 치닫느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현재보다는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잃고 살아왔어요. 마찬가지로 삶의 현장까지 잃는 모순에 빠져 밖으로만 치달으며 살아왔어요. 물론 이게 나쁘거나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깨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이 아름다운 천국에 와서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깨어나면 어떻게 되나요?

지금 여기에서 재대로 살 수 있어요. 제대로 산다는 말은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고, 지금 이대로 온전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오직 이것입니다.

“깨어나야 한다. 오직 깨어나야 한다.  반드시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다!

깨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현실이라 믿고 있는 이 삶에서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지 못하면 이게 꿈인 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집중과 몰입

집중이란 어떤 대상을 명료하게 의식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몰입은 어떤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여 심층의식으로 흐르는 상태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집중과 몰입은 아주 중요한 공부의 과정입니다.
단전호흡이나 호흡명상 중의 집중이란, 들고나는 숨을 바라보고 느끼며 알아차려 가면서 숨의 흐름을 또렷하게 의식하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공부할 때 몰입이란,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맑고 밝게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흐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고요함과 깨어남

깨어날 수 있으려면 고요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고요함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깨어나는 공부에서는 고요함이 절대적입니다. 고요를 유지하면 어떻게 되나요? 고요하면 다 드러납니다. 무엇이 드러나요? 보고자 하는 게 드러나지요. 공부를 하는 사람이 보려는 게 무엇이지요? 나 자신입니다. 내가 무엇인데 나를 보려는 것이지요? 나는 진리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지요? 고요함을 유지하려면, 몰입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환골탈태

환골탈태는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말로는‘몸살이’라고 하는데, 몸을 살리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막히고 뒤틀린 몸을 살리기 위해 골격을 바로 잡고, 근육을 바꾸어 가는 자정작용입니다. 이는 임독맥을 비롯한 전신으로 기운을 유통하여, 막힌 곳은 뚫고 굽은 곳은 펴며, 부족한 곳은 채우고 넘치는 곳은 빼내어 기와 혈이 잘 흐를 수 있는 몸으로 바꾼다는 말입니다. 국선도 공부가 어떻게 몸을 바꿀 수 있나요? 단전호흡을 통해 단화기를 형성하고, 이를 순환하면 몸에서는 자정작용이 일어납니다.

합일과 자각

합일의 체험은 몰입에서 고요함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집중이 계속되면서 몰입에 이르고, 이완의 몰입에서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의식이 확장되면서 호흡을 통해 온몸에 충만한 기운이 빛을 밝혀나가기 시작합니다. 즉, 의식이 열리며 합일의 체험이 스스로 일어납니다.
합일이란 내가 바로 일체로서 하나가 된다는 뜻이고, 이때 깨어서 의식할 수 있기에 자각이 일어납니다. 자각이란 자기 자신으로 깨어서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저기 자신은 분별이 사라진 나를 뜻합니다.

깨어나다!

밝게 깨어나 열고보니, 내 안에 온세상이 가득하고,
세상에 나와 둘러보니, 온 세상에 내가 가득하여라!

이걸 '하나'라 하고, '일체'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