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쉬고, 몸은 놀리며, 의식은 깨어야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러워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하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이 국선도 교과서에서 청산선사님께서 후학들에게 그렇게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수련하시는 모습을 보면 숨을 조작하고, 몸은 고정하고, 의식이 아니라 생각으로 합니다. 수련하지 말고 이제는 공부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감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수련이란 단련한다는 뜻이고 닦는다는 말입니다.
공부한다는 의미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두루 터득해간다는 뜻입니다.
국선도의 공부 방법은 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들고 나는 숨을 바라보고 느껴가며 알아차리라는 말입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생각일까요? 마음일까요? 생각이나 마음이 아닙니다. 의식으로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쉽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숨 역시 단순하고 쉽지 않으면, 지혜로 들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들고 나는 숨을 보려면, 가장 단순해야 하기 때문에, 단전을 중심으로 단전 뒤 쪽 꼬리뼈 중간과 단전, 그리고 괸원을 하나의 숨의 통로라 가정하고, 이 통로를 따라 들고 나는 숨을 바라보고 느끼며 알아차려 가라는 뜻입니다.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는 걸까요?
공기는 코로 들어와 허파로 들고납니다. 하지만 생기는 몸의 기공을 통해 들고납니다. 물론 몸 전체로 생기를 받아들이지만, 초보자가 집중하기에는 가장 단순한 통로로 들고 나는 생기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생소한 방법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