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과 자각

합일과 자각의 의미와 방법론

 

  1. 합일이 무엇입니까?


    합일이란 일체가 되고,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무엇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까? 합일이란 내가 바로 일체로서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우주 안에 가득하다는 뜻이고, 우주가 나와 하나로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공부의 시작은 개체가 전체와 다르지 않음을 체험하면서 발전합니다. 여기서‘하’는 크다는 뜻으로, 하나는 ‘큰 나’와 일체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또 가득하다는 뜻으로 우주에 내가 가득하다는 말이고, 내 안에 우주가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모두를 뜻하기에 나는 천지요, 천지가 곧 나와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된다는 말은 큰 나, 온 세상에 가득한 나, 그 모두를 품은 나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모두라는 뜻과 한울이라는 뜻을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한울’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바로 하늘입니다. ‘나’는 바로 한울로서 ‘우리’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We와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남편, 우리 마누라 같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나를 뜻하지만, 모두가 하늘이고 한 울타리라는 말입니다. 우리 색시, 우리 신랑이라는 뜻은 색시가 곧 하늘이고, 신랑이 큰 울타리라는 뜻이니 모두가 하늘이고 우주라는 말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말은, ‘나’라고 알았던 내가 편협하고 소아적인 내가 아니라, 열린 의식을 통해 온통으로 일체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체험으로서 합일된 상태를 ‘하나’라 하고, ‘일체’라 하고, ‘온통’이라 합니다.

    분별이 일어나면,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나누어집니다. 나 자신도 본래의 나와 분별 된 나로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분별 된 나는 관념이고 분열입니다. 분별 된 나와 분열된 나, 그리고 관념적인 나는 모든 괴로움의 시작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경계를 지어 여기까지 ‘나’고, 이 경계 너머는 ‘나’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에는 하늘도 들어와 있고, 땅도 들어와 있으며, 공기도 들어와 있고, 의식도 들어와 있습니다. 해와 달도, 친구와 이웃도, 조상과 자식도 들어와 있습니다. 한순간 찰나에도 수없이 많은 세포와 분자와 에너지가 밀물처럼 내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가 썰물처럼 우주공간을 향해 흩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이 들어와 머물고, 잠시 머물다 빠져나가며 변화를 만들고 흐름을 이어 갑니다. 이것이 생명이고 활력이고 존재입니다. 이 모두가 모여서 ‘나’라고 하는 존재를 이루기에, 이러한 요소가 다 빠져나가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분별로 나누면, 나 아닌 것에 하늘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나 아닌 것에 공기가 있습니다. 나는 공기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나 아닌 것에 의식이 있지만, 의식이 없는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부모 없이 내가 어떻게 존재하며, 먹거리 없이 어떻게 내가 존재하며, 가르치는 선생 없이 지금의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나 아닌 것이 내게 들어와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 아닌 것으로 인해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이고, 과학적이고, 보편적이라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모두 다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나는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습니다. 어리석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았으며, 열등하지도 않고 부족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나로서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편협한 생각의 나, 분별로 만들어진 나. 이런 나로부터 고통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2. 존재의 자각이란 무엇입니까?


    존재의 자각은 알아차림을 통해서 일어나고, 의식이 열리고 깨어나면 스스로 이를 의식할 수 있습니다. 합일의 상태는 이미 열린 상태이기 때문에 깨어있기만 하면 나 자신은 그대로 드러나면서 자각은 즉각적입니다. 물론 존재의 자각은 합일의 체험이 없어도 일어날 수 있지만 자각이 확연하면 합일 역시 확연합니다.

    이걸 일반인들은 깨달음이니, 견성이니 하면서 등급을 나누고, 또다시 분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깨어서 도달할 곳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말 자체가 틀린 말이고 환상에 불과합니다. 마음 마음 하면서 마음에 매여 살지만, 마음 역시 그저 개념에 불과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깨달음도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각은 분별없는 자기 자신으로 깨어있음, 그 자체를 확연하게 의식함입니다. 나는 알아차림으로 존재하고, 존재는 깨어있음으로 흐르는 자각입니다. 자각은 신비가 아니고 환상도 아니며, 지금 여기 늘 함께하는 일상입니다. 분별로 일어난 내가 아닌 깨어있음을 자각하는 나만이 본래의 나, 하나로서 온통인 나, 이러한 내가 나의 본 모습입니다.


  3. 합일과 자각에 대한 사유

    합일의 체험은 몰입에서 고요함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집중이 계속되면서 몰입에 이르고, 이완의 몰입에서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의식이 확장되면서 호흡을 통해 온몸에 충만한 기운이 빛을 밝혀나가기 시작합니다. 즉, 의식이 열리며 합일의 체험이 스스로 일어납니다.

    합일의 상태는 이미 열린 상태이기 때문에 깨어있기만 하면 나 자신은 그대로 드러나면서 자각은 즉각적입니다. 물론 합일이 없어도 자각은 가능하지만, 자각하면 합일도 동시에 일어납니다. 자각은 의식이 열리며 깨어나 스스로 의식하기에 각성자각이라 하고, 또는 깨달음이라 합니다. 그렇지만 자각이 일어나 거듭난다고 해서 깨어서 도달한다는 깨달음 같은 건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환상이고, 잘못된 표현입니다. 자각은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는 말이고, 분별 된 나로부터 깨어났다는 뜻이며, 꿈에서 깨어났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깨어서 도달할 곳이 없으니, 여기 이대로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나는 깨어나 의식하기에 가능하고, 세상은 깨어난 내가 바라보기에 가능합니다. 내가 있어 나를 의식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의식하기에 내가 가능하고, 세상이 있어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 세상 역시 가능합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습니다. 하지만 깨어나 바라보면 모든 게 가능합니다. 이게 나의 모습이고, 세상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삶은 언제나 기쁘고, 공부하는 사람은 늘 즐기며, 세상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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